책읽기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 박원순

마술빗자루 2009. 6. 9. 15:47

 

(사진출처 : YES24)

 

박원순 저 | 검둥소(2009. 4)

 

이 사회의 희망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며

지역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모든 분께

이 책을 바칩니다.

 

박원순 변호사의 헌사가 첫페이지에 있다.

 

이 책은 박원순 변호사가 희망제작소의 연구원들과 함께 진행한 '박원순의 희망탐사'의 원고를 모아 만든 책이다.

책 이름 앞에 '박원순의 희망찾기 1'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 앞으로 희망찾기 시리즈가 계속 나오리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지역경제의 희망을 만드는 마을, 환경 농업의 희망을 만드는 마을, 마을 문화의 희망을 만드는 마을, 연대의 희망을 만드는 마을들이 박원순 변호사가 찾아낸 희망 마을이다.

생태농업을 정착시키거나 마을의 전통을 유지, 계승하거나, 또는 그 마을만의 특색을 만들어가거나 하는 방법으로 마을 사람들은 희망을 일구어내고, 또 그 희망을 이웃마을들에게 널리 전파하고 있다.

 

희망 마을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갈등과 고난을 넘어 결실을 맺거나 맺기 직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아쉬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책에는 박원순 변호사의 감상만이 존재한다.

희망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희망 마을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사가 쏟아지고, 그들이 일구어낸 희망의 결실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하지만 이들이 희망을 일구어가는 과정들이 너무 많이 생략되어 있다.

20개 마을을 모두 담다 보니 지면의 한계상 모든 마을의 내용을 자세히 풀어낼 수는 없었을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 책을 통해 희망마을을 들여다보고, 함께 희망을 꿈꾸기에는 너무나 미흡하다.

박원순 변호사가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함께 꿈꾸기를 바라고 있다면 내용의 충실성이 좀더 담보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한편의 잘쓰여진 감상문을 읽는 느낌이었다면 지나칠까?

한반도 곳곳에서, 자기가 뿌리 내리고 사는 땅에서 열심히 희망을 일구어가는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정도라면 만족스러울까?

많은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하나 더!

이 책의 3부 마을 문화가 예술이 되다 중 '양반들이 만든 전통 체험 마을'이 있다.

경북 고령의 집성촌 개실마을에 대한 이야기다.

개실마을은 한옥을 지켜내고, 개실마을의 전통을 체험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마을을 찾는 이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훌륭하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집성촌의 종손이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종손의 말이 곧 법이다. 집성촌이니 당연한 것인가?

이 종손 위원장은 올해 일흔셋인데 열다섯에 장가를 가서 열여섯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내내 고함을 지르며 살아왔단다.

종손의 '이거 와카노!'라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된단다.

종손인 그는 1년에 열 다섯번의 제사를 지내고, 하루에도 여러번, 많은 때는 아홉번이나 옷을 바꿔 입는다고 한다.

종손의 집에는 솟을대문이 있는데 양산을 쓴 여자가 솟을대문을 통과하려 하면 큰 소리로 고함을 친단다.

"어디라고 함부로 여자가 양산을 쓰고 그 문을 통과하느냐"고.

 

개실마을이 체험마을이 된 것은 군수의 권유 때문이었는데 박원순 변호사는 '사실 양반 마을과 농촌 관광이라는 것이 안 어울리긴 하다'라고 썼다.

그 당시 양반의 아녀자들이 외부 손님을 받아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서비스해주는 건 얼토당토 않은 소리로 받아들였으나, 차츰 수입도 생기고 재미도 붙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난 개실마을에서 박원순 변호사가 말하는 희망이 어떤 희망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마을을 찾는 손님들에게 밥해주고 빨래해주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소리인데, 아홉번씩 옷 갈아 입으시는 어른 수발은 당연한 것인가?

1년에 열 다섯번 제사를 지낼 때 그 제사 준비를 하는 여인네들은 인터뷰를 하셨나 묻고 싶다.

양산 쓰고 솟을대문 지나치다 할아버지께 '어디 감히 여자가'라는 소리를 들은 그 여성의 심정은 헤아려 보셨는지 묻고 싶다.

개실마을에서 지켜내고자 하는 전통이란 것이 남성만의 전통은 아닌지 묻고 싶다.

버럭 소리 한번으로 모든 뜻을 관철시키는 어르신이 아니라 그 전통을 지키기 위해 힘들었을, 지금도 힘들 개실마을 여성들에게도 그 전통이 희망인지 묻고 싶다.

 

평소 실천하는 지성인으로서의 박원순 변호사를 존경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만큼은 정말이지 실망스럽다.